일기장

141223

JJU :) 2014. 12. 23. 23:18

 

 

 

엄마 아빠 없는 집에서 나온다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쪽지가 있었다

 

어릴 때 엄마한테 쪽지 많이 썼다.

아직도 기억나는 건

시츄를 양반다리 품에 눕히고서 한창 집전화기로 수다를 떨던 엄마 앞에

'엄마 저 컴퓨터 딱 한 시간만 하면 안되요?? 딱 한 번만 하고 나서 한 시간 넘기 전에 무조건 끄고 공부할게요.'

뭐 이런 쪽지를 갖다 주던 어느 오후.

초등학생이었거나 중학생이었던 나.

엄마는 에메랄드 색 집전화기를 한 손으로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늘 종이에 꽃 같은 걸 그리고 있었다. 가계부쓰던 모나미볼펜으로.

 

어릴 때 엄마의 글씨도 많이 봤다.

아직도 기억나는 건

'엄마 없어도 밥 꼭 먹고 있어 엄마 금방 갔다올께 내새끼.'

뭐 이런 쪽지가 쓰여있던 식탁.

난생 처음으로 점심밥을 혼자 먹던 국민학생의 나.

그 날이 기억난다.

햇살 스며드는 베란다가 보이는 약간 어두운 부엌

짙은 나무색 식탁 위에 연두색 보자기로 폭- 덮여있던 장조림 반찬과 계란 반찬 숟가락 젓가락까지.

 

엄마한테

글을 쓰지 않은 지 꽤 되었다.

날이 갈수록 엄마없이 먹는 끼니만 쌓인다.

엄마는 아직도 400km 떨어진 곳에서 내가 밥을 챙겨먹는지 걱정하는데

나는 엄마 밥을 걱정해본 적이 별로 없다.

글도 끼니도 없어진 채로

국민학생이거나 초등학생이거나 중학생이었던 나는

어느 새 스물 몇 해를 살아간다.

 

우리 엄마는 나이가 들어가도 정말 예쁘다.

엄마 미모가 시들지 않는다는 사실에 나는 정말 안도한다.

빨리 엄마 피부관리도 시켜주고 여행도 시켜주고 맛난 밥도 사드리고 싶다.

2014년 12월 23일

아직은 무능한 내가 당장은 할 수 없는 그런 것들 대신에

엄마한테 쪽지를 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