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

150114

JJU :) 2015. 1. 14. 22:20

중국.

상해와 항주.

일주일간 홀로 떠난 첫 해외여행이었다.

혼자였기 때문에 많은 것들을 보고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숙소에서 혼자 나름대로 끄적일 시간도 있었다.

 

 

1/6

-차들이 신호를 대놓고 무시하는데 횡단보도에 있는 사람들을 잘도 피해간다. 보행자 신호에 따라 걷는 내 앞과 뒤로 차들이 마구 지나간다. 이 모습이 왠지 모르게 웃겨서 자꾸 웃었다.

-동방명주도 와이탄거리도 생각만큼은 볼 것이 없었다. 아니다 볼 건 많았다. 엄밀히 말해서 느낄 것이 없었다.

-밤의 난징루에서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건 어찌 아는지 마사지 / 아가씨 하며 잘도 따라 붙는다.

-중국 사람들은 한국에서 유행하는 아웃도어를 입지 않고 핏이 있는 바지를 입지 않는다.

-중국인들은 영어를 못한다. 나는 중국어를 한 마디도 못한다. 떠 도는 소리들은 말 그대로 소리 그 자체일 뿐이다.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는 얼마나 답답한 소리일까?

-물가가 생각보다 싸진 않다.

-길거리 음식을 파는데 그 음식이나 과일이 비에 젖어도 비를 가릴 생각을 안 한다. 이것도 참 웃겨서 연신 웃었다.

-스타벅스나 버거킹, 콜드스톤, 할리스커피, 파리바게트가 반갑다.

-신호는 지지리도 안 지키는 차들이 가만 보면 죄다 고급 외제차들이다. 아니, 저런 고급차를 타고 저렇게 횡단보도를 휘저을 수 있다니. 뭔가 미묘하게 부조화스러웠다.

-한 때 내가 좋아했었고 당시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시트로엥 자동차가 많았다. 실물을 보니 별로였다.

-아파트들이 왠지 모르게 낡았다. 엄청 새 건물인데 낡았다. 고급차들이 즐비한 그 아파트들은 베란다가 빨래로 가득 차 있었다.

-길거리와 지하철역 곳곳에 사회주의 가치를 표방하는 표어와 포스터가 있다.

-도로명 체제가 혼자 아날로그 방식으로 길을 찾던 내게 큰 도움을 줬다.

-지하철이 정말 편리하다. 지하철 개찰구를 통과하기 전에 공항처럼 짐 검사를 해야하는 것 하나는 불편하다.

-능숙한 서양인 아저씨는 공안의 말을 무시하고 짐검사 따위 하지 않은 채 손만 휘휘 저으며 통과했다. 밀려드는 인파때문에 공안은 그 아저씨를 그냥 보내주었다. 캐리어와 가방을 죄다 벗어서 검사받던 내가 멍청해보였다. 하지만 그 서양인 아저씨처럼 할 수는 없었다.

-곳곳에 공안들이 있다. 퍼블릭 폴리스라고 적혀있는데 딱 봐도 믿음직스럽진 않다.

-스케쳐스를 신은 여자를 봤다. 그 많고 많은 사람 중에서 내가 본 단 한 명의 평범(?)한 여자였다. 아니나 다를까 일행과 한국어를 쓰면서 지나가더라. 다른 거의 모든 사람들은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촌스럽다. 물론 나는 그들이 촌스럽다 세련되다를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지금의 한국 모습과 다르기만 하다면 그들이 촌스럽다 혹은 세련되다라고 말할 수 없었을게다. 하지만 그들의 외관은 한국과 다른 별개의 것이 아니라 과거의 한국과 닮아있었다. 때문에 나는 그들이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상해의 지하철 속에서 문득 중국인이 아니라는 점에 감사함을 느꼈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외관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패션과 헤어스타일을 보려고 중국에 온 것은 아니니까.

-탁 트인 평지덕에 마음이 트였다.

-탁한 하늘때문에 마음이 답답했다.

-중국은 뭐가 다 크다. 도로도 거리도 심지어 같은 종류의 자동차 라이트 크기마저 크다. 뭐 저리 크나 싶은데, 그 넓은 도로가 그다지 붐비지 않는다. 한국이 작은건 확실하다.

-시차가 한 시간 나는데 해가 지는 거리는 한 시간 차이가 아닌 것 같다. 해가 너무 빨리 진다. 일곱시 반이 되었는데 아무도 없었다. 열두시 넘어서도 깨어 있는 것이 한국으로는 새벽 두시쯤 된 느낌이다.

 

 

1/7

-자꾸 내 눈에는 사람들의 겉모습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게 내가 볼 수 있는 수준인거겠지만.

-중국 남자들의 헤어스타일은 심각하다.

-차들이 서로 잡아먹을듯이 빵빵거린다. 그런데 정말 쿨하다. 엄청난 클락션 소리가 끝나면 유유히 서로 갈 길을 간다. 한국에서는 그쯤되면 창문 내리고 욕을 한바가지 했을게다.

-사람들이 오토바이와 자전거를 엄청나게 타고 다닌다. 신기하게도 오토바이에서 소리가 나지 않는다. 탈탈거리는 시끄러운 스쿠터가 없다. 전동차처럼 미끄러지듯 지나가는 오토바이들이 있을 뿐이다. 걷다보면 소리소문없이 나를 지나치는 오토바이에 조금 놀라곤 했다.

-어제 비를 다 맞고 있던 길거리 군고구마와 과일들이 오늘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나와있다. 내가 그 사실을 알건 모르건 그들은 별 신경을 쓰지 않을거다.

-상해에서 항주까지 가는 기차따위가 무려 ktx 속도를 넘나들고, 공항에서 시내로 오는 기차는 심지어 430km이다. 그런데 역무원이나 검표소 직원, 공안들은 43km짜리 열차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의식이 문물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우리나라에서는 ktx 승무원이 가장 친절한데 여기는 표정없는 인간들 뿐이다. 차라리 기계가 낫겠다. 인구가 많고 공안이니 승무원이니 검표원이니 직업의 수요도 많아 보이고 경제가 발전할수록 더 늘어나겠지만, 정신이 문물을 따라가지 못하는 한 그다지 긍정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지하철과 기차는 소음구덩이 시장통이다.

-대체로 쌍커풀이 있는 큰 눈이거나(그렇다고 예쁜 눈은 아니다) 아예 쌍커풀 없는 작은 눈이거나 둘 중 하나다. 아직 잘 생기거나 예쁜 사람은 한 명도 정말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상해에서 항주로 가는 길은 평야다. 유럽풍 집들이 예쁘장하고 나즈막하게 자리잡고 있다. 유럽을 가보지 않은 것이 함정이지만 어쨌든 뭔가 유럽스러웠다. 주택들 주변의 나무들도 정갈하다. 그리고 곳곳에 운하같은 물이 있어서 한 층 더 유럽같다. 대기는 탁하지만 이런 풍경들이 보기 좋았다.

-길에 있는 차들은 최신식이거나 최구식이다. 중간이 없다. 우리나라의 택시들은 거의 다 신형 승용차들인데 여기의 택시들은 엑셀같이 엄청난 구식이다. 폭스바겐이 많다.

-한국에서 보지 못한 브랜드들이 종종 보인다. 코스카커피가 많다.

-어딜 가도 귀가 쉴 틈이 없으니 더 피곤한 느낌이다. 중국어는 발음할 때 깊은 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구성되어 있는걸까. 다들 입 바로 앞에서 소리가 나는 것 같다. 부드럽거나 영롱하거나 혹은 귀엽거나 울림이 있는 목소리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그냥 다 쇳소리다.

-그래도 문득 그들이 사람같다는 느낌을 받곤 신기할 때가 있다.

-그들도 그냥 사람들이다. 오늘을 내일을 살아간다. 엄청나게 비싸지만 신호따위는 무시하는 차, 엄청나게 삐까번쩍하지만 그냥 낡아보이는 아파트. 그 속에서 그들은 그냥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삶의 모습이 느껴지는 순간에는 나름 정이 간다.

-막연히 알고 상상만 하던 것들이 눈 앞에 실재하는 것으로 닥칠 때 느낌이 묘하다.

 

 

1/8

-도로명 체제가 잘 되어 있어서 혼자 길을 찾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시호가 어마어마하게 클 줄 알았다. 바다처럼 끝이 보이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작았다. 물론 그래도 엄청나게 큰 거지만. 와이탄거리도 그렇고 동방명주, 상해의 난징루, 항주의 시호까지 기대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그래도 해질녘의 시호가 정말 예뻤다.

-혼자 이틀을 보낸 후 친구들을 만났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들이 있게 마련이다. 사람들과 부대끼는 여행도 재미있네.

-송성가무같은 정해진 퍼포먼스를 좋아하지 않는다. 단체 행동으로 볼 수밖에 없었는데 보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어마어마하다. 이렇게 스케일이 큰 퍼포먼스가 있나 싶었다. 보길 잘 했다.

 

 

1/9

-퇴근길 항주 시내. 평생 알지도 못했고 존재조차 염두에 없던 사람들이 여기에 산다. 그리고 그들과 같은 시각에 같은 도로에 있다. 중국의 퇴근길에도 석양이 진다. 그들의 퇴근길에 내가 있다는 사실, 내 여행길에 그들의 퇴근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그들은 집에 들어가서 여느 때처럼 가족의 혹은 개인의 저녁을 맞이할거다. 이게 나는 정말 새삼 신기하다.

 

 

1/10

-점점 중국인이 되어간다. 편한 점은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려도 된다는 점과 무단횡단을 해도 된다는 점. 흡연자라면 담배를 피면서 길을 걷거나 실내에서 펴도 된다는 점.

 

 

1/11

-중국 남자들은 머리가 대체로 짧다. 대부분은 뒤통수쪽 머리카락이 마치 감지 않은 머리카락처럼 일어 서 있다.

-비듬이 곳곳에 보인다. 안 감은 것이 분명하다.

-중국인들은 음식의 향에만 신경쓰고 몸의 향에는 신경쓰지 않는다. 음식에는 향이 있는데 그들에게는 향이 없다. 뭔가 뒤바뀐 것 같다. 나는 그들에게서 향기가 나길 바라지만 음식에서는 향기가 나지 않길 바란다.

-편의점 호빵을 한 입 먹고 버렸다. 음식을 버려본 적이 거의 없는 내가. 맛이 없었으면 그냥 먹었을텐데 도저히 먹을 수 없는 맛이었다. 그들은 한국의 깻잎을 먹지 못한다고 한다. 내가 호빵의 향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기에는 깻잎을 먹지 못하는 것과 같을테니, 그들에게는 얼마나 이상한 일일까.

-디자인 혹은 패션은 과한 데가 있다.

-확실히 빨간 옷이 눈에 많이 보인다. 최근 한국에서도 붉은 옷이 자주 보였다. 만약 중국인들이 그 유행이 자기네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빨강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한다고 해도 나는 그다지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 빨강이 오늘 내가 본 빨강이라면 썩 갖고 싶지 않다.

 

 

1/12

-여행의 마지막.

-푸동공항으로 오는 길이 혼란스러웠다. 아무 정보도 없이 너무 자신있게 길을 나섰다가 귀신에 홀린 줄 알았다. 종점행 열차가 어느 새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니.

-하늘에서 본 중국의 밤은 전-혀 지저분하지 않다. 자연을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인간의 불빛이 참 아름답다.

-중국 여행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좀 알 것 같다. 엄마와 다시 오고 싶다.

 

 

#

넓고 먼 곳에 혼자 있었다.

다시 익숙한 삶으로 돌아갈 것이다.

며칠 뒤면 돌아간다, 며칠 뒤면 돌아간다-라는 생각 덕분에 중국 여행이 행복했었다.

여기서 살아야 한다-라는 전제가 있었다면

과연 지하철 옆 자리 그 남자의 비듬들과 무질서한 보행로, 불친절한 매표소 직원들을 보고 웃을 수 있었을까.

시간이 빠르다.

그리고 늘 아쉽다.

돌아갈 것을 알기에 일주일을 열심히 살았다. 피곤해도 아침에 일어나고 들어오면 바로 잠들고.

삶도 마찬가지일테다.

마냥 살 수 있을 줄 알고 나태하게 살아가지만

실상은 삶이야말로 길고 큰 여행이다.

여기서 하루하루를 아쉬워했듯이

매일을 아쉬워하면서 매일을 알차게 살아가자.

중국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들을 어린 아이의 눈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은

이곳이 새롭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남은 날들이 얼마 없다는 생각때문이었다.

삶도 그러하겠지.

 

#

혼자서 온전히 하루를 보냈던 어제가 참 좋았다.

그 어느 관광지도 아닌 중국인들의 삶 속에서 보냈던 하루.

상해의 난징루나 동방명주, 타이캉루같은 곳이 아닌, 말 그대로 그들의 삶 속이었던 어느 시장.

거기서 나는 진짜배기 그들의 모습을 보았다. 사람으로서의 모습들.

난생 처음 보는 것들을 사고 팔고 있었다.

 

거리는 더러웠으며

그 복잡한 가운데서도 곳곳에서 마작을 두고 웃고 떠들고

장기판 옆에서는 누군가가 훈수를 두었다.

어떤 아저씨는 불독을 끌고 의자에 앉아서 허공을 보고 연신 웃으며 내심 자기의 불독을 자랑스러워 했으며

그 불독은 멍청한 눈을 하고 헥헥거리며 주저 앉아 있었다.

아직 나오지도 않은 갤럭시6가 sansung이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었으며

분명 한국 택시쯤에서 잃어버렸을 법한 핸드폰들이 거래되고 있었다.

상아같은 골동품들을 널부러놓고 팔며 그걸 또 100위안이나 주고 사는 할아버지도 있었고

시장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절반쯤이 입고 있는 옷을 누군가는 팔고 있었고

처음 보는 음식들도 팔고 있었다.

차도는 자전거와 오토바이로 꽉 차 있었고 사람들이 득실대서

버스는 연신 클락션을 울려댔고

역시나 다들 클락션 소리따위에 개의치않고 쿨하게 갈 길을 가고 있었다.

 

내가 처음 보는 풍광은

그들의 일상이었다.

내가 한국인인지 중국인인지, 인간인지 외계인인지 그들은 아-무 관심이 없었고

나는 그냥 부대껴서 걸을 수 있었다.

 

숙소 역시도 도심에서 조금은 떨어져있었다. 상해인들의 일상과 가까웠던 곳.

숙소에서 나의 아침을 깨운 건 알람소리가 아니라

바로 앞에 있던 학교의 종소리였다.

더군다나 그 종소리는 재송초의 종소리와 같은 푸른 옷소매.

 

그들도 살아간다.

오늘까지 내게 없던 세계는

사실 잘 돌아가고 있었고

그들만의 질서 속에서 잘 살아지고 있었다.

한국에 돌아간 후도 마찬가지겠지.

나는 어쩌면 중국의 오늘을 잊고

다시 한국의 삶 속에서 나의 삶을 살기 바쁠테지만

그 순간에도 나처럼 누군가는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끝까지 더럽고 촌스럽고 시끄러우며 불친절하다 생각했지만

사실 내가 그들보다 나은 점은 하나도 없다.

아니다. 딱 한 가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나의 세계가, 그들과는 다른 누군가의 세계가 존재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들의 세계를 안다는 것.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든간에.

그들은 내가 누군지, 자신과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자신의 눈 앞의 마작패에 혹은 굴러다닌 골동품에 관심이 있을 뿐이지만

나는 나와 다른 무언가를 보았다는 것.

 

중국을 방문하지 않았더라도 나와 다른 삶이 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누구나 그러할거다.

하지만 직접 보고 느낄 때의 그 '다름'에 대한 생각은

관념 속에서 머무는 '다름'과는 확실히 조금 다르다.